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사례 (문단 편집) === [[유럽]] === * [[홀로코스트]] - 유대인 게토와 갑자기 우편 연락이 끊기거나 [[도시전설|학살에 관여한 자들의 입을 통해 소문이 돌았지만]] 독일인들은 설마 문명국에서 그런 일이 일어날까 생각했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마을 사람들을 불러모아서 무덤을 파게 했다. 그 독일인들도 모두 거기에 묻어버리고 싶었지만 억지로 참았다. 바로 코앞에 있었는데도 자기들은 정말 모르는 일이라고 빡빡 우기기에 나는 "당신들도 똑같은 살인마"라고 소리쳐줬다. - 미 육군, 레슬리 브라운 병장([[밴드 오브 브라더스]])] 이 주장은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독일인들은 유대인들이 학대당하고 죽임을 당하는 것을 모르지는 않았다. 그 정도 정보는 이미 [[수정의 밤|크리스탈나흐트]] 때부터 알려졌고 나치에 대들면 강제 수용소 가서 학대당하다 죽는다고 알고 있었다. 하지만 가스실을 이용한 대규모 학살은 일반 독일 시민들에게는 진짜 '설마 그 정도겠어?', '총살이겠지' 정도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다만 수용소 인근 주민은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매우 잘 알고 있었다. 그걸 발설했다간 자기들도 같이 가스실로 갈 처지여서 발설할 수 없었을 뿐.[* 애초에 나치는 이런 수용소 학살을 극비리에 정했고 이를 결정한 반제 회의도 비밀리에 진행되었다. 때문에 눈치를 채고 발설한 사람 또한 [[학살|처리]]할 수밖에 없다.] * [[소련 해체]] - [[소련]]의 [[정치]]가들이 원래 [[러시아]] 주민들이 살던 곳을 행정 문제 등으로 인하여 다른 [[공화국]]의 영토로 만들어 버리거나 점령한 지역에 [[러시아]] 주민들을 이주시킨 적이 있었다. 물론, 당시엔 '''설마 우리가 망하겠어?'''라는 얘기가 있었다. 소련 해체 이후로는 러시아와 소련의 다른 공화국들의 영토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 [[독일 재통일]] -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몇 달 전 1989년 초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독일인들은 통일이 되려면 빨라도 10년, 보통은 몇십년은 걸린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심지어 [[귄터 샤보프스키]]의 말실수 한마디로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직후에도 독일이 1년만에 통일을 이룰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고, 1990년 3월 동독 첫 자유총선에서도 점진적 통일을 주장한 사회민주당의 승리가 예상되었다. 그러나 막판에 화폐통합과 경제통합을 내건 독일연합이 압승을 거두면서 베를린 장벽 붕괴 1년만에 독일은 재통일을 이루었다. * [[영국]]의 국왕 [[조지 5세]]의 [[예언]] * 조지 5세가 생전에 큰 아들에 대해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내가 죽으면 저 녀석은 10개월 안에 왕위에서 내려올 것이다.' 1936년 1월 20일 조지 5세가 사망하고 큰아들이자 당시 [[프린스 오브 웨일스]]였던 [[에드워드 8세|에드워드 왕세자]]가 왕위에 오르게 되는데, [[윌리스 심프슨|미국인 이혼녀]]랑 결혼하기 위해 왕위를 동생 [[조지 6세|요크공작 앨버트]]에게 물려주고 실제로 10개월은 아니고 11개월 만에 왕위에서 내려오게 된다. * 둘째 아들이 낳은 손녀를 귀여워한 조지 5세가 '왕위를 둘째에게 넘겨줘서 손녀가 이어받게 하고 싶다'는 말을 했다는데, [[에드워드 8세|큰 아들]]이 왕위를 포기하면서 [[조지 6세|둘째가 즉위]]하고 정말로 [[엘리자베스 2세|손녀가 이어받게 된다]]. * [[제2차 세계대전]] * [[베르사유 조약]]이 독일에게 너무 가혹하다. - 당시 영국 대표단의 일원이자 재무성의 일원이었던 [[존 메이너드 케인스]]가 '(연합국 지도자들의) 역겨운 언행을 참을 수 없다'면서 사표를 던졌다. 그 직후 펴낸 소책자 '평화의 경제적 귀결'에서 케인스는 전쟁배상금 개념 자체를 비난했다. 나중에는 "'''이제 남은 것은 전쟁뿐'''"이라는 말까지 했다. 그리고 영국군 총사령관 더글러스 헤이그도 "독일에게 불필요한 굴욕을 주어 그들이 '''복수할 마음'''을 품게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들의 말은 모두 현실이 되었다. * 베르사유 조약이 독일에게 너무 관대하다. - 프랑스의 연합군 총사령관 [[페르디낭 포슈]] 장군이 "세상에 이런 평화가 어디 있는가. 이것은 단지 '''20년간의 휴전 협정'''일 뿐이다."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2차 세계 대전은 그로부터 정확히 20년 64일 후에 발발했다. * [[뮌헨 협정]] 후 [[윈스턴 처칠]]의 말 - 영국과 프랑스는 불명예와 전쟁 사이에서 선택해야 했다. 그들은 불명예를 선택했다. 그리고 그들은 전쟁을 겪을 것이다. * 영국과 프랑스의 참전 - 서막이 시작되었을 때 당시 유럽인들은 적당히 싸우다가 말겠지라고 생각했다. 사실 독일이 너무 천방지축으로 날뛰다 보니 영국과 프랑스가 아무리 전쟁을 하기 싫었다해도 최소한 독일에 선전포고는 해야 했던 상황이라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긴 했다. 다만 이건 반만 맞아떨어졌는데 전쟁을 엄청나게 기피한 영국과 프랑스는 [[폴란드 침공]]이 일어나고도 [[가짜 전쟁]]만 했다. 결국 영국은 [[노르웨이 침공]]이 터질 무렵에야 군사적 행동에 들어갔고 프랑스는 [[프랑스 침공]]이 벌어지고서야 군사적 행동에 들어갔지만 둘 다 막는데 실패했다. 그나마 노르웨이 침공에서 독일 해군을 박살낸게 성과. * [[헤르만 괴링]]의 마이어 발언 - [[헤르만 괴링#s-4.5|문서]] 참조. * [[인민의 종(시트콤)]] 한 교사가 직접 정치계로 뛰어들어 대통령이 된다는 내용의 시트콤이다. 그런데 주인공을 연기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가 시트콤처럼 생뚱맞은 직업에서 진짜 대통령이 되면서 현실로 이루어졌다. 마침 저 시트콤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의 대통령 당선에 영향을 끼친 걸 생각하면 재밌는 상황이다. * [[2022년 대러시아 경제제재]] - [[크리스 [구 소련여자] ]]가 [[루블]]로 도네를 받고서 "루블로 주면.. 언제 똥 될지 모르는데"라고 했는데,[[https://youtu.be/5UyQs87KXCc?t=213|#]] 1년 반 후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발생하면서 루블화 가치가 폭락했다. * [[데이비드 캐머런]]이 [[2012년]] [[영국 총리|총리]]가 된 후 [[2022년|10년 뒤]]에 [[인도계 영국인|남아시아계]] 총리가 나오는데 [[리시 수낙|그 사람]]은 [[보수당(영국)|보수당]] 출신일 것이라고 했다. 당시에는 너무 먼 미래가 아니냐는 의견이 많았다. 그러나 [[엘리자베스 2세|여왕]]의 [[엘리자베스 2세/사망|서거]] 이후 [[리즈 트러스]]가 경제 실책으로 인해 45일만에 물러나고 [[리시 수낙]]이 최연소, 최초의 [[인도계 영국인|아시아계]], [[힌두교|힌두교도]] [[영국 총리|총리]]가 되고 [[보수당(영국)|보수당]]이 그 기록을 만들면서 [[데이비드 캐머런|캐머런]]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 --[[보기 대령 행진곡|히틀러는 진짜로 짝부랄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